2014년 2월 22일 토요일

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가 주가 각자 헌법·정부·재판소를 두는 연방 국가로서, 국가 원수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이다.

정치[편집]

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가 주가 각자 헌법·정부·재판소를 두는 연방 국가로서, 국가 원수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은 명목상에 불과하며, 실권은 총리가 갖는다. 총리는 연방 의회의 과반수를 얻은 자로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4년이다. 입법 기관은 연방 상원과 연방 하원로 이루어진 양원제로서 상원은 연방 의회의 의결에 대한 거부권이 없다. 연방 의회 의원은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를 병용한 직접 선거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현 연방 의회 의원 수는 672명(지역구 배정 초과 의석 때문에 매 총선거마다 총수는 달라진다)이다. 한편 연방 상원은 각 주와 특별시에서 인구 비례에 따라 임명된 대표로 구성되며, 주 정부는 연방 상원을 통하여 연방의 입법과 행정 업무에 참여한다. 입법권은 연방 의회와 연방 상원 모두에 있으나 실질적 권한은 연방 의회에 있다. 정당으로는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CDU)과 그 자매당인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연합(CSU), 독일 사회민주당(SPD), 독일 자유민주당(FDP) 등의 기성 정당이 있으며, 1980년대 서독에서 등장하여 기성 정당에 많은 자극과 영향을 준 독일 녹색당, 동독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인 독일 민주사회당(PDS), 1990년 구 동독지역 진보 세력이 창당한 동맹 90 등이 있다. 1982년 10월에 중도 자민당의 내각 사퇴로 슈미트 정권이 붕괴하고 콜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연립 정권이 들어섰다. 1994년 10월 총선 결과 콜 총리의 집권 여당이 승리하여 제5차 콜 정권이 탄생하였다. 독일은 통일 후 중부 유럽 국가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제공하고 이들의 대서방 관계설정에 선도적 역할을 자처하는 한편 세계 무대에서의 영향력 증대를 꾀하고 있다. 1998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함으로써 슈뢰더 사민당 당수가 새로운 총리가 되었고 2002년 재취임했다. 2005년 총선이후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이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로 취임하였다.

독일의 주요 정당[편집]

독일 연방하원(Bundestag)에 진출한 정당들을 기준한다. 2009년 9월 독일연방공화국 국회의원 총선거 의석수 순서대로 정렬했다.

행정 구역[편집]

Germany Laender Map.png
16개 주(Land. 정식 명칭은 연방주 Bundesland)로 구성되어 있다.
  1. 바덴-뷔르템베르그 주 (Baden-Württemberg)
  2. 바이에른 주 (Bayern)
  3. 베를린 (Berlin)
  4. 브란덴부르그 주 (Brandenburg)
  5. 브레멘 주 (Bremen)
  6. 함부르그 주 (Hamburg)
  7. 헤센 주 (Hessen)
  8. 메클렌부르그-포어폼메른 주 (Mecklenburg-Vorpommern)
  9. 니더작센 주 (Niedersachsen)
  1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Nordrhein-Westfalen)
  11. 라인란트-팔츠 주 (Rheinland-Pfalz)
  12. 자를란트 주 (Saarland)
  13. 작센 주 (Sachsen)
  14. 작센-안할트 주 (Sachsen-Anhalt)
  15.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Schleswig-Holstein)
  16. 튀링엔 주 (Thüringen)

분단과 재통일 (1945년 ~ 1990년)

분단과 재통일 (1945년 ~ 1990년)[편집]

1945년의 분할 점령된 독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수많은 독일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독일은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영토를 잃고 옛 동부 영토와 다른 지역에서 독일인 1,500만 명이 추방되었으며, 독일 여성 2백만 명 이상이 강간당하고, 여러 주요 도시가 파괴되었다. 남은 영토와 베를린 연합국이 4개 군사 점령 지구로 분할하였다.
1949년 5월 23일에 독일 영토 가운데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는 서방측 지구가 통합하여 독일 연방 공화국이 들어섰으며, 같은 해 10월 7일에 소련측 지구는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두 나라를 각각 '서독'과 '동독'으로 칭하였으며, 베를린 역시 서베를린 동베를린으로 갈라졌다. 동독은 동베를린을 수도로 삼았으며, 서독의 경우는 이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서독은 두 나라로 갈라진 당시 상태가 언젠가는 종식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으므로 수도 본의 지위를 임시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서독은 "사회 시장 경제" 체제와 더불어 연방제 의회 공화국 체제를 수립하였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1950년대 초부터 서독은 장기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1955년에 서독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였으며, 1957년에는 유럽 경제 공동체에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동독은 동구권에 속한 나라로 바르샤바 조약과 붉은 군대 점령군을 통하여 소련의 정치/군사적 통제를 받았다. 동독은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긴 하였으나 권력은 공산주의 세력인 독일 통일사회당(SED)의 정치국원들이 독점하였다.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거대한 비밀 정보 기관인슈타지와 그 밖의 여러 통일사회당 하부 조직을 통해 사회 전반을 통제하였다. 그 대신 국가는 싼 값에 대중의 기초 생활 필수 재화를 제공하였다. 동독은 소련식 계획 경제 체제를 세웠으나 나중에는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에 가입하였다. 동독에서는 주로 동독의 사회 보장 제도의 이익과 더불어 서독이 언제든 침공할지 모른다는 내용을 선전하였으나, 동독 시민 다수는 서방의 정치 자유와 경제 번영을 부러워하였다. 동독인이 서독으로 월경하지 못하게끔 막고자 1961년에 건설한 베를린 장벽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통일 당시 베를린의 모습
1970년대 초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서독간의 대립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는데, 이 정책에는 독일이 2차 대전에서 영토를 잃은 사실을 사실상 인정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과 동독이 동반진출한 바도 있었다.
1989년 5월 2일, 헝가리 철의 장막을 해체하기로 결정하고 8월 23일에 국경을 개방하자 9월 11일에 동독인 수천 명이 헝가리 국경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이 사건이 동독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동독 당국은 11월에 뜻밖에도 국경 제한을 해제하여 동독 시민들이 서방을 다녀갔다. 당초 동독은 자신이 국가로서 계속 존속할 수 있게끔 통제 정도만 조절하기 위한 의도로 국경 개방 조치를 단행하였으나, 이 일로 말미암아 동독에서 벤데 개혁이 가속화되었으나 결국 1년 뒤인 1990년 9월 12일 2+4 조약으로 귀결되어 전후 당시 독일을 점령하던 4개국은 항복 문서에 따른 자신들의 권리를 폐기하고 독일에 완전한 주권을 돌려주었다. 덕분에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재통일을 이루었으며, 옛 동독에서 새로이 편성된 다섯 주가 독일 연방 공화국에 귀속되었다.

독일은 서방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징병제 국가였으나, 2010년에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국방[편집]

독일은 서방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징병제 국가였으나, 2010년에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148,996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 408대, 전술기 783대, 군함 90척을 보유하고 있다. 예산 감축으로 독일연방군은 전력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버렸으며, GFP의 순위에서도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어서 그것에 관련된 조약들이 있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 (나치독일) 당시에 세계 최초의 순항미사일 V-1 로켓과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 V-2 로켓과 그 외에도 여러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였거나 설계하였다. 세계최초의 제트 전투기 Heinkel He280을 개발하였다. 프로토타입이 시험비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최초의 양산 제트 전투기인 메서슈미트 Me 262도 있다. 세계최초의 스텔스 항공기 Horten Ho 229 전익기를 개발하였고 세계 최초로 램제트 엔진을 개발하였다. 여러 종류의 제트 전투기들도 개발하거나 계획하였다. 세계최초의 지대공미사일 Fliegerfaust(Luftfaust) Surface-to-Air Unguided Missile, 세계 최초의 공대공 유도 미사일 Ruhrstahl/Kramer X-4, 세계최초로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개발되고 무선으로 조종되며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공대공(AAM)미사일 Luftkampfrakete Henschel Hs 298, 최초로 실용화된 공대공 로켓 Brodrakete R4/M "Orkan"(Hurricane, 허리케인), Wgr 21(Wurfgranate 21) 210mm 로켓탄(쉽게 말해 다연장 로켓탄을 전투기에 장착하였다.), Jagerrakete X4(Fighter Rocket X4)를 개발하였다.독일은 세계 최다 잠수함 건조 국가이다. 1706척(1·2차대전 1540척+전후166척)을 건조하였다.
독일 해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재래식 동력 잠수함(디젤 잠수함) 및 구축함 등을 보유 중이고 대양 해군을 추구하고 있다.

통일이후의 독일경제

통일이후의 독일경제[편집]

통일 후 독일 경제는 큰 혼란을 겪었다. 통일 당시 동독주민의 노동생산성은 서독의 1/5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기술의 상대적 낙후, 장비의 노후, 환경오염 및 사회기반시설의 낙후로 동·서독지역이 균형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신탁관리청 산하의 관리대상으로는 8,500개 이상의 국유기업, 국영 도소매업·서비스업, 사회주의통일당(SED) 및 구 동독 정부기관의 부동산, 구 인민소유 협동농장(LPG) 등으로서, 사유화 대상기업에 소속된 노동자수는 410만 명으로 구 동독 전 노동자수의 45%에 달한다. 원래 공매절차를 고려하였으나 기업의 부실 정도가 지나쳐 수의계약에 의한 매각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통일 후 신생연방주의 산업입지 여건은 막대한 국가지원에도 불구하고 불리하다. 90∼93년 신생연방주에 투자한 액수는 공공·민간부분을 합쳐 3,110억 마르크로 한 해 평균 1,000억 마르크 이상을 상회하였으나, 이 액수는 같은 기간 구연방주에 투자한 액수의 16.3%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2차산업 부문의 40%가 넘던 산업구조가 34.8%, 3차산업 50%로 행정·통신·교통·상업 부문과 건설 부문에서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독일 방송국 설립에 관한 입법은 각 주의 소관 사항이며

방송[편집]

독일 방송국 설립에 관한 입법은 각 주의 소관 사항이며 독일 방송은 공영 방송 민영 방송이 공존하는 이중 체계다. 이전에는 공영 체제로만 운영되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 상업 방송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상업적 방송을 허가하는 입법이 1984년 니더작센 주에서 통과되었고 민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사가 인가되었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공영/민영 혼합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공영 방송에 관한 사항은 주 정부의 법률 또는 주 정부간의 국가 조약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으며 방송의 경우 신문보다 시설, 재정에 있어서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20]
독일의 방송은 연방 정부의 감독 하에 공단(公團)으로 운영되는데, 각 방송 공단은 각각 독자적으로 방송 내용을 편성·방송하고 있다. 독일의 공영 방송사는 9개의 지방 공영 방송사의 연합체인 ARD와 주 정부간의 합의로 설립된 ZDF, 독일의 해외 홍보 공영 방송인 도이체 벨레가 있다. 민영 방송사는 1985년 설립된 Sat.1, 1986년 설립된 RTL 텔레비전,Tele 5, 프로지벤 등이 있다. 위성 방송으로는 3sat Tagesschau 24가 있으며, 1982년 이래 케이블 텔레비전을 설치하기 시작하여 민간 유선 방송망이 활발히 설치되고 있다.[22]
ARD가 2012년에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프로그램별 편성에서 공영 방송의 경우 뉴스를 비롯한 정보 프로그램이 전체 방송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ARD가 42%, ZDF가 47%를 차지하며, 상업 방송사들은 평균 20% 이하의 편성비율을 보인다.[24]
독일의 라디오 방송 1923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였고,[25] 현재는 500개가 넘는 방송국이 있다. 대표적인 해외 공영 방송인 도이체 벨레에선 전 세계에 30개의 언어로 정보와 뉴스를 방송한다. 전국 공영 방송으로는 도이칠란트라디오에서 뉴스 중심의 도이칠란트푼크(DLF)와 음악 위주의 도이칠란트라디오 쿨투어(DKultur)를 방송하며 각 지방 방송마다 별도의 라디오 채널이 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공영 방송이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이 라디오 방송을 즐긴다.